홍사랑의 ·詩

나는 존재한다

洪 儻 [홍 당] 2019. 5. 11. 19:01

나는  존재한다

글/ 메라니

 

꼬부랑 허리 굽은 모습

시집 온 그날부터

낭군님 떠 받들고 시부모님 모시고

자식 뒷바라지에 얻은 보따리 하나

삶이 나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주름진 얼굴엔 영양분을 발라도

깊이 파인 골진 곳은 밀가루 뿌린 듯

허연 가루가 그대로 남는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라는

주례사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희끗희끗  빛바랜 반백이 되고

휘어진 허리는 지팡이 하나 의지하고

애써 미소 지면

입 안엔 이 곳 저곳은

장마 뒤 움푹 패인 땅을 닮은 이빨들

흠뻑 들이마시는 음식들을 뱉어낸다

 

잦은 소피는 한 걸음 디뎌 볼 때마나

지르르 흘려도 감각은 없고

집안 구석구석 다니는 일상을 발 길 닿은 대로

바삐 걸어야 하는데

땅을 밟는 감각의 기관은 무디어 갈피를 못 잡기도 한다

 

더욱 걱정이 되는 일은

몸안 구석구석까지 찾아드는 병마들이

지루한 고통을 주는 것

약과 전쟁을 치르기를 어언 사십 고개부터

고희가 넘어서기까지 그칠 줄 모른 채

이 차전 삼 차전을 치르는 시간으로 종착역이 안 보이듯

살며 겪어야 하는 신의 명령 같은 과제를

익숙하게 대처하는 힘이 부치는 모습이 안 스럽다

 

다만

살아 숨 쉬는 일이 다행이다

하고 어버이날을 스스로 자축을 해 본다

 

2019  5 8

오후에 달리고 달리다 茶 마시는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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