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존재한다
글/ 메라니
꼬부랑 허리 굽은 모습
시집 온 그날부터
낭군님 떠 받들고 시부모님 모시고
자식 뒷바라지에 얻은 보따리 하나
삶이 나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주름진 얼굴엔 영양분을 발라도
깊이 파인 골진 곳은 밀가루 뿌린 듯
허연 가루가 그대로 남는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라는
주례사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희끗희끗 빛바랜 반백이 되고
휘어진 허리는 지팡이 하나 의지하고
애써 미소 지면
입 안엔 이 곳 저곳은
장마 뒤 움푹 패인 땅을 닮은 이빨들
흠뻑 들이마시는 음식들을 뱉어낸다
잦은 소피는 한 걸음 디뎌 볼 때마나
지르르 흘려도 감각은 없고
집안 구석구석 다니는 일상을 발 길 닿은 대로
바삐 걸어야 하는데
땅을 밟는 감각의 기관은 무디어 갈피를 못 잡기도 한다
더욱 걱정이 되는 일은
몸안 구석구석까지 찾아드는 병마들이
지루한 고통을 주는 것
약과 전쟁을 치르기를 어언 사십 고개부터
고희가 넘어서기까지 그칠 줄 모른 채
이 차전 삼 차전을 치르는 시간으로 종착역이 안 보이듯
살며 겪어야 하는 신의 명령 같은 과제를
익숙하게 대처하는 힘이 부치는 모습이 안 스럽다
다만
살아 숨 쉬는 일이 다행이다
하고 어버이날을 스스로 자축을 해 본다
2019 5 8
오후에 달리고 달리다 茶 마시는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