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사랑 삶의 야이기

洪 儻 [홍 당] 2018. 5. 10. 09:38

 


. 차(茶)와 함께 하는 생활

2. 다도(茶道)의 세계
어떤 사람은 차의 맛을 인생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인생의 오미(五味 : 다섯가지 맛 즉, 쓰고 짜고 시고 달고 매운 맛)가
차에 다 들어있다고 그러지요.
차의 참맛을 알려 하자면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음엔 무슨 맛인지도 모르다가(풀냄새만 난다는 분도 있더군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야 차맛에 길들게 되고
차의 그윽하고 깊은 맛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예전에 뿌리있는 집안에서는
과년한 딸이 시집갈 때 차씨를 주어 보냈다고 합니다.
차나무는 직근성(直根性), 곧 뿌리가 아래로 곧장 뻗는 성질이 있거든요.
몇 년 정도 뿌리내렸던 차나무를 옮겨심게 되면 살아나기가 힘들죠.
따라서 시집간 집에 잘 뿌리내리고 살라는 의미였다고 해요.
한편으로는 맘 변치 말고 지조를 지키라는 엄한 계시이기도 한데요,
달리보자면, 여성에게만 지조와 정절을 강요했던 시대,
여성에게 지게 했던 굴레와 같은 흔적이라 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차를 즐겨 마셨던 여성들 - 특히 고려, 조선 - 도 많았답니다.
좀 다른 얘기인데 흥미진진한 사실 한가지는,
조선시대 포도청, 형조, 의금부에 있던 차모(茶母)라는 직책의 여성이지요.
겉으로는 차 심부름을 하였지만,
실은 지금의 비밀여형사(?)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자격은 5척 이상의 키에 막걸리 세 사발을 단숨에 마시고
쌀 5말을 거뜬히 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직무는 남자가 못들어가는 규방이나 안방에 출입하여
그 집 종이나 식모 등을 유인, 정탐하는 것이었는데,
대개 역적모의를 하는 집에 드나들었다고 전합니다.
차모는 치마 속에 2척 정도의 쇠도리깨와 오라를 지니고 다니다가
죄가 분명한 사람의 집에는 그 도리깨로 들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죄인을 묶어가지고 올 수가 있었다지요.


다도를 말하기 전에 먼저 옛사람들이 차를 즐겨 마신 이유를 몇가지 들어봅니다.
-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운이 생긴다.
- 손님과 맑은 이야기를 나누니 즐겁다.
- 예술적 흥취에 이끌려 창작활동을 도우며 독서에 몰두 하게 된다.
- 사람을 깨우치게 하며 수신하게 한다.
- 차를 끓이고 마시며 선물로 주고받는 중에 취미생활을 하게 된다.
- 약으로서의 효능이 있다.
등등 뭐 어려울 것 없지요?
이 중 처음 네가지가 바로 다도와 통한답니다.


그런데 중국의 육우는 그의 <다경>에서
차에는 아홉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첫째가 만들기(造)요,
둘째가 감별하기(別)요,
셋째가 그릇(器)이요,
넷째가 불(火)이요,
다섯째가 물(水)이요,
여섯째가 굽기(灸)요,
일곱째가 가루내기(末)요,
여덟째가 달이기(煮)요,
아홉째가 마시기(飮)이다.


흐려서 따고 밤에 불에 쬐어 말리는 것은 만들기가 아니다,
씹어서 맛을 보거나 코로 냄새를 맡는 것은 감별하는 것이 아니다,
노린내 나는 솥과 비린내 나는 사발은 그릇이 아니다,
진이 있는 덜 마른 땔나무나 부엌 숯은 불이 아니다,
물살이 빠른 여울과 막혀서 괸 물은 물이 아니다,
겉만 익고 속이 날것인 것은 굽기가 아니다,
푸른 가루가 흩날리고 옥색 티끌이 이는 것은 가루가 아니다,
어줍게 다루거나 덤벼서 휘젓는 것은 달이기가 아니다,
여름에는 즐겨 마시다가 겨울에 그치는 것은 마시기가 아니다.' 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들 어려움이 곧 다도 수련의 대상이자
다도의 과정이 된다고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하면, 차 한잔 마시는 데 뭐가 이리 번거롭냐고 하실테죠?
옛일이려니 여기고서 쉬이 넘어가세요.
도(道)는 막히거나 걸림이 없는 길을 말합니다.
도의 경지란, 생각지 않고 힘쓰지 않고도 중용을 알고 행하며,
자연의 조화와 같이 저절로 되는 상태라지요.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에,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玄妙之道)가 있으니 유, 불, 선을 아우른다"는 문장은
이른바 '풍류도(風流道)'를 말하는 것이고,
<노자(老子)>의 구절을 빌면 '도법자연(道法自然 : 도는 곧 자연이다)',
<중용(中庸)>의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
하늘이 명한 것을 성품이라 하고 성품에 따르는 것을 도라 한다)'
등이 도에 대한 풀이입니다.


예전에 사찰의 차 마시는 의식에는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참고했습니다.
중국 선종의 백장 선사가, 사찰의 엄격한 생활 규칙을 적은 이 책에는
(예를 들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 등등)
차 달일 때의 북 울리는 법, 종치는 법 등 다례규범이 나옵니다.
대체로 옛사람들은 구도적이랄 수 있는 차생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를 즐기며 맑게 사색하고 행동하는...
꼭이 의식, 형식으로서의 다법만이 다도인 것은 아니지요.
그렇다면 다도란 무엇을 일러 말하는 것일까요?
사실 다도라 얘기되는 건 일본의 차 마시는 예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차가
일본에서 까다로운 격식과 절차, 법도를 갖게 된 것이죠.
그것이 다시 다도라는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건너오게 된 것입니다.
이는 차 마시는 일을 어렵게 만들어,
차문화의 쇠퇴를 불러 온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일부 다인들의, 자기네 만의 차법이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을 만들어내기도 했지요.
차의 역사를 둘러보면, 우리나라 다인들은
차 마시는 데 굳이 그처럼 까다로운 예법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물을 바라보듯, 편안한 마음으로 마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다반사(茶飯事)'라는 말도 생겼을 터입니다.


고려의 대표적 다인인 이규보 님은
그의 많은 시 속에서 다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차를 마시는 일에 구구히 도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조용히 선의 경지에서 차를 즐겼던 것이예요.
하지만 그가 최초로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선창한 다인이었다는 사실은
일본의 다도계에서도 시인하는 것이라 합니다.
(원감국사도 '다연선탑(茶烟禪榻)'이란 구절을 남겼습니다.)
여기 그 정신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시가 있습니다.
초암의 다른 날 선방을 두드려 몇권의 오묘한 책 깊은 뜻을 토론하리
비록 늙은 몸이나 손수 샘물 길을 수 있으니
(차) 한사발 이것이 곧 참선의 시작이라네
'다도'라는 명시적 표현은 조선후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나타납니다.


초의 님의 <동다송> 29번째 글을 살짝 눈여겨보도록 하지요.
(<동다송>은 31송 534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차따는 데 묘를 다하고 차를 만드는 데 정성을 다하며
물은 참된 것을 얻고 우리는 데 중정을 얻으면
체(물)와 신(차)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차가 건실하고 신령스러이 어우러진다.
이렇게 되면 다도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다도'란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그것이 사람을 옭아매는 음다의 절차와 형식을 뜻했던 건 아닙니다.


한마디로 말해, 차를 끓이고 마시는 데에 있어서의
정성스러운 마음가짐과 분별, 이것이지요.
차를 끓이고 마시다 보면 어느덧 절로 익숙해지고
빛깔, 소리, 향기를 느끼는 멋스러움을 자연 익히게 됩니다.
차를 대할 때의 말과 행동은 이어서 습관이 되고
이 습관이 묵어 자연스런 내면의 표출인 품성으로 발전하죠.
그러면 마침내 덕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혼자 마실 때와는 달리 손님 접대시에는 얼마간의 형식이 필요하게 되지만
여기에도 정성과 분별이 그 처음과 끝을 이룰 거라고 보아집니다.
이 때, 찻자리에서 오손도손 정답게 주고받는 이야기를 '다담(茶談)'이라고 하며
달리 하는 말로는 '다화(茶話)', '연어(軟語 : 부드러운 말, 좋은 이야기)',
'청화(淸話 : 맑은 이야기)'라고도 부릅니다.
다른 나라의 다도를 살펴볼 수 있는 문헌으로 대표적인 것은
당나라 육우의 <다경(茶經)>, 송나라 채양의 <다록(茶錄)>,
송나라 휘종의 <대관다론(大觀茶論)>,
일본 에이사이(榮西) 선사의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 등을 듭니다.


차의 성인, 차의 고전이라는 육우와 그의 저서에 대해
한국차 만의 우수성과 다가(茶家)의 긍지를 보이는 글이 있습니다.
시를 보는 것이 다경을 읽느니보다 오히려 낫고
육생원(육우)이 품평한 것은 찌꺼기일 뿐이라네
- 이규보
막 불을 피워 차를 달이니 육우의 입맛 품위가 낮구나
- 이 색
일본의 센노리큐(千利休)는 4규 7칙(四規七則)을 언급하는데요,
이는 다도의 네가지 규범과 일곱가지 규칙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서 4규란
화(和 : 온화), 경(敬 : 경건), 청(淸 : 맑음), 적(寂 : 고요)을 말하지요.
차 마시는 그대로 여여('茶道一如', '茶禪一體')한 것이라면
굳이 거기에 4규니 7칙이니
세세히 따지고 가름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 밖에 차에 관한 기록을 읽을 수 있는 문헌들로는
권문해 <대동운부군옥>, 이수광 <지봉유설>, 김육 <유원총보>,
빙허각 <규합총서>, 정약용 <각다고> <동다기> <다신계절목>,
초의 <동다송> <다신전>, 서유구 <임원십육지>, 유중림 <증보산림경제>,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 최한기 <농정회요>, 박정양 <죽천고>,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문일평 <차 고사> 등등이 있습니다.
더 이상 다도에 대해선 잡다한 설명을 나열하기 보다는
전해져오는 시문 등을 통하여
그들의 다도세계와 풍류를 느껴보는 게 더 좋을 듯 합니다.


차 한잔에 이야기 한마디 점점 심오한 경지에 들어가네
이 즐거움 참으로 맑고 조촐하니 굳이 술에 취할 필요 있으리
- 이규보
몸을 던져 평상에 누워 문득 이 몸 잊었는데
한낮 베개 위 바람이 불어 절로 잠이 깨누나
꿈 속에선 이 한 몸 머물 데가 없었네
온 세상이 한낱 장정(: 먼길 가는 사람을 전별하던 곳)일 뿐
빈 누각에서 꿈을 깨고 보니 해는 지려하고
흐릿한 두 눈은 부질없이 먼 산 봉우리를 보노메라
뉘 있어 숨어사는 사람의 한적한 기미를 알리요
난간에서 봄잠이야 고관의 봉급보다 나으리니


- 임 춘
나라의 은혜에 몸 바치지 못한 늙은 서생 차 마시는 버릇으로 세상일을 잊는구나
눈보라 날리는 밤 깊은 재실에 홀로 누워 돌 솥의 솔바람 소리 즐겨 듣노라
- 정몽주
마음이 물처럼 맑으니 그윽하여 걸림이 없네
이것이 바로 사물과 나를 모두 잊는 경지이니
찻잔에 혼자 차를 따라 마심이 가히 좋구나
- 김시습
구름 바위 밑에 내 살 곳을 점쳐서 정한 것은
게으르고 거칠은 성미를 바로잡기 위해서요
숲 속에 앉아 깊은 산에 사는 새를 벗하여
냇가 거닐며 물고기를 따라 노니네
한가하면 꽃잎 흩어진 언덕길을 쓸고 때로는 약초밭도 간다네
이 밖에는 모두 할 일 없으니 차 마시는 여가에 옛 책을 보네


- 서경덕
쓴 차 마시는 엄숙한 때는 속인의 어리석음 깨치기에 알맞고
좋은 때 좋은 장소는 참선하기에 알맞구나
- 신 위
휘 날아 지나는 건 뉘집의 제비이며 곧장 날아오는 것은 어느 곳의 꽃인가
깊은 뜨락에 해는 길고 일이 없어 한 병의 봄 샘물을 떠 스스로 차를 달이네


- 기녀 주씨
처음 벼루를 여니 밤이 시를 재촉하네
북두칠성 하늘에 걸리고 월출은 더디는데
높은 누대 위에 등을 달고 한가로이 앉아
눈을 보며 차 달이니 이 얼마나 즐거운가


- 유한당 홍씨
낮이 되면 차 한잔 밤이 오면 한바탕 잠자네
푸른 산 흰 구름과 더불어 만사에 나고죽음이 없음을 말하네


- 서산대사
여러 해 동안 은근한 불로 작은 화로에 차를 달였으니
신묘한 공덕이 없지는 않으리
차 한잔 마시고서 거문고를 어루만지다
밝은 달 바라보니 문득 부르고 싶은 사람이여
봄날 차반의 푸른잔에 옥로차를 올리느라
오래된 벽엔 연기가 얼룩져 서려있네
잔에 가득한 것이 어찌 꼭 술이어야만 하리
답청가는 내일은 또 찻병을 가져가리라


- 영수각 서씨
하늘빛은 물을 닮고 물은 연기 같아라
이 곳에 와서 논 지 이미 어언 반년
밝은 달과 함께 누워 좋은 밤이 그 얼마던고
맑은 강에서 이제 흰 기러기 마주하고 졸음에 겨워하네
남을 시기하고 미워함은 본래 마음에 없으니
좋다 궂다 하는 말이 어찌 귀에 들어오리
소매 속엔 아직도 경뢰소(차 이름) 남았으니
구름에 의지하여 두릉천(샘물 이름)으로 또 차를 끓이네


- 초 의
맷돌 샘물을 떠서 차를 우리고
싱그런 맛에 취해 선정 드는데
어디서 길손 찾아와 산길 묻는다


- 수 안
백설 덮인 상상봉에 싹을 내는 차나무는 강풍에도 겁이 없다
곡우 때는 땅김 나고 우수 경칩 봄기운에
강남 제비 봄소식이 이내 품에 알려왔소
한 잎 두 잎 따는 손이 님의 생각 잃을까요......
잘 못 먹어 보챈 애기 작설 먹여 잠을 재고
큰아기가 몸살나면 작설 먹여 놀게 하고
엄살 많은 시애비는 작설 올려 효도하고
시샘 많은 시어머니 꿀을 드려 달래놓고
혼자 사는 청산이는 밤늦도록 작설 먹고 근심없이 잠을 잔다
바람 바람 봄바람아 작설 낳게 불지마라 이슬 먹는 작설 낳게
한 잎 두 잎 따서 모아 인적 기도 멀리한 날
앞뒤 당산 산신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바람 할매 비나이다.....


- 민요 중에서
무등산 작설차를 곱돌솥에 달여내어
초의선사 다법대로 한잔 들어 맛을 보고
또 한잔은 빛깔 보고 다시 한잔 향내 맡고
다도를 듣노라니 밤 깊은 줄 몰랐구나


- 이은상
... 첫째 잔은 목구멍과 입술을 적시며
둘째 잔은 외로운 번민을 씻어주네
셋째 잔은 메마른 창자를 찾나니 생각나는 글자가 5천권이라
네째 잔에 가벼운 땀이 솟아 평생의 불평일랑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지네
다섯째 잔은 기골이 맑아지고
여섯째 잔 만에 신선과 통하네
일곱째 잔은 채 마시지도 않았건만
느끼노니 양쪽 겨드랑이에서 맑은 바람 솔솔 일레라
봉래산이 어드매뇨 이 맑은 바람을 타고 돌아가려하네...


- 중국 당나라 시대, 노동
이렇듯 시가의 정취 속에서 차의 향, 색, 미를 즐기며
번잡한 마음을 갈마무려 다스리는 일은,
차를 마시는 최상의 한적한 즐거움이 아닐런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차 마시는 '때'를 가리는 것도 필요가 있을 거라 보아집니다.
<다소(茶疏)>의 저자 허차서가 일찍이 말해둔 게 있습니다.


그 중 '차 마시기 좋은 때'를 몇가지 적어보면,
'마음이나 몸이 한가할 때(心手閒適),
시를 읽고 피로할 때(披영疲倦),
생각이 어지러울 때(意緖紛亂),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聽歌拍曲),
노래가 끝났을 때(歌罷曲終),
문을 잠그고 세상 일을 돌아보지 않을 때(杜門避事),
거문고를 타고 그림을 볼 때(鼓琴看畵),
밤 깊이 서로 이야기할 때(夜深共語),
밝은 창가 맑은 책상 앞에 앉을 때(明窓淨궤),
손과 주인이 다정한 경우(賓主款狎),
벗을 만나고 돌아왔을 때(訪友初歸),
날이 화창하고 산들바람이 불 때(風日晴和),
가볍게 가랑비가 내리는 날(輕陰微雨),
우거진 숲과 참대밭 속에 있을 때(茂林修竹),
꽃과 새를 감상할 때(課花責鳥),
여름날 정자에서 더위를 피할 때(夏亭避暑),
자그마한 서재에서 향을 피울 때(小院焚香),
술자리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진 뒤(酒란人散),
외떨어진 있는 한적한 산사에 갔을 때(淸幽寺觀)' 등등입니다.


그리고 차 마시기 좋지 않은 때는,
'일을 하면서(作事), 연극을 보면서(觀劇),
글을 베끼거나 편지를 쓸 때(發書柬), 큰 비나 눈이 내릴 때(大雨雪),
시끌벅적한 큰 잔치 때(長筵大席), 책장을 넘겨볼 때(飜閱卷帙),
바쁜 날(人事忙迫)' 등등이라는 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참, 문득 생각나는 지허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개량종 야부기다는 증식이 쉽고 잘 자라지만
그 잎으로 만든 차를 전통차라 부르는 건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대신 우리의 재래종인 차나무의 뿌리야말로
땅 밑의 순수한 대지의 기가 서려있는 석회질층에 자리를 잡아
그 지질의 영양을 흡수하여 담백하고 최상의 질이 된다는 것이지요.


대개 대단위 공장식 재배를 하는 차는,
다수확을 위해 화학비료를 많이 주게 되고
또 그런 만큼 병충해가 끓으면 농약을 사용하게 됩니다.
차를 만들 때도 기계를 사용하게 되지요.
차는 잎을 바로 우려서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점, 녹차를 드시는 님이라면 한번 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땅 속 깊은 곳의 양분을 흡수한 차는
비록 성장이 더디고 따는 잎의 양도 적지만
그 맛과 향을 볼 때 지표의 거름기를 먹고 자란 차와는 다를 게 확실합니다.
물론 이러한 차나무의 잎을 손으로 일일이 따서 만든 차는 비싸다는 게 큰 흠이죠.
따라서 좀 더 질이 좋으면서도 저렴한 가격의 차를 만드는 게
차의 대중화를 위해 남겨진 과제랄 수 있습니다.
지허스님의 말씀으로는 차를 고를 때,
'마무리 덖기'를 언제 했느냐를 따지는 게 중요한 관건이 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보통 하품으로 간주하는 8, 9월 경의 차잎이라도
덖고 비비는 기술에 따라 이듬해 봄이면 제맛을 낸다 그럽니다.
덖음차의 제조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이 덖는 공정이 중요합니다.
부족하다 싶으면 풋냄새와 함께 발효가 일어나고
지나치다 싶으면 탄냄새와 함께 쓴 맛이 나고 모양도 안좋아지지요.
한약제 특히 보약 종류의 전통적인 제법은
구증구포(九蒸九曝 : 찌고 말리는 과정을 아홉번 되풀이 함)를 거치는 데,
드물긴 하지만 손으로 직접 만드는 차 중에
이런 방법을 사용한 것이 있기도 합니다.


덖음차의 중간중간에 비비기를 하는 것은
, 식히면서 열에 의한 엽록소 파괴를 줄임과 동시에
세포막을 부수어서 차의 각종 성분이 물에 잘 우러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생각난 김에 이것도 잠시 말씀드리지요.
높은 품격을 갖춘, 차맛이 좋은 차로는
'대밭에서 자란 재래종 차나무 어린 잎을 따 손으로 덖어 만든 것'
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댓그늘 속에서 댓잎에 맺히는 이슬을 받고 자라는데다
차나무의 직근성(直根性 : 뿌리가 수직 아래로 뻗는 성질)이
대나무의 횡근성(橫根性 : 뿌리가 옆으로 뻗는 성질)과
이상적으로 어울리는 동양학적 상생, 조화 환경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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