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버지와 나[삶의 이야기
글/ 홍 사랑
우리 아버지 살아오신 삶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봐도
한국인으로서 매우 당당하시었답니다
만주에서 할머님과 할아버님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공부하라
그래야 대한민국이라는 너의 나라 모두의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유언처럼 늘 하셨대요
그리하시어 일곱 살 때 일본으로 가시어
직장을 알바로 [그 시절엔 소사라고 하였대요]
직장을 다니며 학교 다니시고 성적이 우수 하시어
일본 아이들을 제치고 반장을 하고 상장도 놓치지 않고 타 셨대요
우수성적으로 졸업을 한 후
일본인 회사에서 엔지니어 시험을 본 후 당당하게
일본인들을 앞서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고 기술을 익히셨답니다
그것으로 인연이 되어 일본 회사인 미국 지사장인 벤 네니 티 아저씨를 만나
회사 생활을 하시다 그분이 한국 지사장직으로 옮기실 때 함께 나가자 하셨답니다
웬 떡이나? 하고 따라 나오시어
위로 큰누님이 수원 사신다는 할머님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지금의 송탄이라는 곳에서 [서정리 군부대 발전소 소장직으로]
근무하신 아버지께서는 밤이나 낮이나 누님의 소식을 찾아야 한다는
일심으로 기어이 만남의 날이 왔답니다
고모부님과 고모님은
자식 없이 단 둘이 사시어 우리 팔 남매를
모두 대학 진학과 고등학교를 졸업시키신 훌륭한 장학재단 같은
뜻깊은 일을 주신 듯 키워주신 분들이셨어요
군부대 다니시면서 그 시절 박정희 대통령보다 두 배 많은
월급을 타신 아버지에게 이다음 나이 들어 고생 하지 않으려면
자식들 고생 시키지 않으려면 땅을 사라 하셨답니다
고모부님이 모아모아두고 땅을 사라 땅 만 사 두면 후회 안 한다 하시어
고모부님이 농사지을 논들을 열마지기 열다섯 마지기
또 대지와 밭을 가리지 않으시고 나오기만 하면 눈 여겨두었다 사 들이곤 하셨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벤 베니티 아저씨께서 미국으로 들어가시게 [정년퇴직으로 ]되었는데
그때 그분은 자식을 낳을 수가 없이 부자로 아내와 단 둘이 살았는데
우리 집 쌍둥이 작은 동생을 자기에게 달라고 크게 성장시킨 후 한국으로 데리고 오겠다 했는데
고모님이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가 그분이 미국을 들어간 소식 듣고 집으로 오셨답니다
그 쌍둥이 남동생은 지금 홍 사랑과 이곳 바닷가에서
식당을 회사 상대로 번창하게 삶을 일구고 삽니다 늙어서 살 집 질 땅도 구입하고
전원생활하고 나면 쓸쓸할 것 같아 일층 집은 한 방찻 집을 운영하려는 구상도 합니다
2021 5 24
아버지 산소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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